인근성지

갈매못순교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TEL. 041-932-1311
- 요나성당과 거리 28km
- 소요시간 37분
-
미사시간
주일
오전 8시(본당 주일미사)
오전 11시 30분(순례미사)
평일
월요일 미사없음
화~토 오전 11시 30분(순례미사
*순례미사를 원하시면, 사무실(041-932-1311)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갈매못순교성지 소개
갈매못 지명의 유래

오천의 역사
갈매못 성지 인근에 있는 오천항은 바다 양면에 있는 산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폭풍우에도 피해가 없고, 또 수심이 깊어 간만의 차로 인해 선박의 통행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서해안의 천혜의 항구이다. 오천항은 이미 백제 때부터 회이포라는 항구로 이용되었으며, 통일 신라 당시에는 당나라와의 교역항구로서 이름이 높았고, 고려로 접어들면서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오천항 일대를 지키는 군선이 머물렀던 곳이다. 오천에 수영(水營)이 설치된 것은 조선조 때이다. 조선조 당시 우리나라에는 바다를 지키는 3개의 수영이 있었다. 충무의 경상 수영, 여수의 전라 수영, 오천의 충청 수영이다. 각 수영에는 수군절도사를 상주시켰으며, 바다를 지키는 군영이 함께 있었다.
오천에는 조선 태조 5년(1405년)에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자리하면서 처음으로 군영이 설치되었고, 중종 4년(1509년)에 서해안 방어 기지로 쌓기 시작한 오천성은 무려 16년간에 걸쳐 축성되었다. 높이 3m, 길이가 3,000m나 되는 오천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었고, 정3품관의 수도절도사가 상주하였다. 오천항은 군선 100여 척이 정박하고, 수군도 3,000명이 항상 주둔하였던 군항이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충청 수군절도사가 주둔했던 장교청 건물과 진휼청만이 남아 있다. 샤를 달래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갈매못 성지를 “형장(刑場)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형장은 바로 수군들의 훈련장이었다.